기유(1909)년 4월 28일 상제님께서 15세 진주이신 도주님의 봉천행 여정을 확인하시기 위해 기차가 다니는 들판으로 가 기차를 향해 명을 내리시고 또한 공사를 보셨다.15
과연 이 공사는 무엇이었을까?
양위 상제님 외에 이에 대해 알 수 있는 분은 도전님 외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전님께서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도, 『전경』에 기록하시지도 않으셨다. 그럼에도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회요람』을 통해 1909년 만주 봉천에서 도주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천부(天賦)의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으셨음을 알려주셨기에, 우리는 그 공사를 종통계승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조정산(趙鼎山) 도주(道主)께서 만주(滿洲) 봉천(奉天)에서 강성상제(姜聖上帝)로부터 그 천부(天賦)의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으신 데서 비롯하여, 유명(遺命)으로 종통(宗統)을 이어받으신 도전(都典)께서 영도(領導)하시는 우금(于今)까지 반세기(半世紀)를 훨씬 넘은 六十여년간(餘年間)의 발전사(發展史)를 가진 종단(宗團)의 명칭(名稱)이다.
위의 글을 통해 본다면 『대순진리회요람』은 대순진리회 종단의 역사를 60여 년간으로 규정하고 도주님이 받으신 종통계승의 계시를 종단 역사의 시작점으로 잡고 있다. 결국 『대순진리회요람』이 1969년을 발간 기준으로 하고 있기에 이에 따른다면 종단 역사의 시작점이 되는 종통계승의 계시는 1909년에 있어야 하며 따라서 기유(1909)년 4월 28일 도주님의 만주 봉천행 도중이나 그 직후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가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우리 종단의 치성에 4월 28일의 봉천명 치성이 있음을 상기해 본다면 계시는 기유년 4월 28일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그날 상제님께서 행하신 공사는 이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와 관련되었다 할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날의 계시 내용 대부분은 사실 정확한 근거가 없기에 믿기 어렵다. 하지만 그 중 이치로 보아 신빙성이 높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일화는 정산(鼎山)이라는 존호를 그날 도주님께서 계시로써 받았다는 것이다. 우당(牛堂)이라는 도전님의 존호를 도주님이 지어주셨음을 본다면 도주님의 존호는 상제님이 내려주셔야 옳고 또한 천부의 종통 계승의 계시라면 반드시 솥과 시루의 이치가 있어야 하기에 이 일화는 사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정산이라는 존호를 주시는 계시 외에 다른 천명이 계시로 있었음은 상제님이 행하신 공사들을 도의 이치로 살펴본다면 추측할 수 있는데 바로 기유년부터 시작되는 도주님의 50년 공부, 도주님과 본령합리를 이루는 23자의 태을주와 관련되어 상제님이 행하신 공사 등이 해당된다. 기유(1909)년 3월 상제님은 다음의 두 공사를 행하신다.16
두 공사는 모두 화천하셨던 기유년에 행해지고 도주님 종통계승의 증거인 50년 공부 및 태을주와 관련되어 있다.
상제께서 어느 날 류 찬명(柳賛明)과 김 자현(金自賢) 두 종도를 앞에 세우고 각각 十만 인에게 포덕하라고 말씀하시니 찬명은 곧 응낙하였으나 자현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상제의 재촉을 받고 비로소 응낙하느니라. 이때 상제께서 “내가 평천하 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 하라. 치천하는 五十년 공부이니라. 매인이 여섯 명씩 포덕하라”고 이르시고 또 “내가 태을주(太乙呪)와 운장주(雲長呪)를 벌써 시험해 보았으니 김 병욱의 액을 태을주로 풀고 장 효순의 난을 운장주로 풀었느니라”고 말씀하셨도다.17
종도들이 모인 곳에서 상제께서 三월 어느 날 가라사대 “지금은 신명 해원시대니라. 동일한 五十년 공부에 어떤 사람을 해원하리오. 최 제우는 경신(庚申)에 득도하여 시천주(侍天呪)를 얻었는바 기유(己酉)까지 五十년이 되니라. 충남(忠南) 비인(庇仁) 사람 김 경흔(金京訢)은 五十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되 그 주문을 신명으로부터 얻을 때에 그 주문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명을 받았느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이 두 사람 중의 누구를 해원하리오”라고 물으시니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 중에서 광찬이 “상제님의 처분을 기다리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고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읽어 가르치시니 그 주문은 이러하였도다. 「吽哆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耶都來 吽哩喊哩娑婆啊」18
첫 번째 공사는 치천하(治天下)가 50년 공부임을 밝히고 종도들에게 치천하의 50년 공부를 명하시는 것이다. 50년 공부는 진주인 종통계승자와 관련된 공사이기에 이 구절의 치천하 50년 공부 역시 도주님에게 주어진 천명이 분명하다.
무술(1958)년 3월 6일 도주님께서 화천하시며 “오십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도주님께서 이미 그 이전부터 당신이 화천하시는 해인 무술(1958)년이 50년 공부종필에 해당함을 알고 계셨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결국 도주님께서 50년 공부의 시작점인 기유(1909)년에 상제님의 평천하(平天下) 공사를 이어 치천하 50년 공부를 종필하라는 천명을 받았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성사재인이라는 해원법리에 따라 치천하 50년 공부라는 상제님의 천명은 상제님의 종도들과 도주님에게 모두 공평히 주어져야 옳기에, 1909년 도주님은 계시를 통해 치천하 50년 공부에 대한 천명을 받으셨고 1958년 화천하시면서 이를 완수하셨음을 밝히신 것이다. 분명 도주님이 받으신 종통 계승의 계시에 정산(鼎山), 즉 솥의 이치에 따른 진주(眞主)로서 치천하 50년 공부를 종필하라는 천명이 있었던 것이다.19
두 번째 공사는 신명해원의 공사인데, 50년 공부로 사람을 살리는 주문인 태을주를 얻은 김경흔의 해원을 결정하시고, 그 해원을 위해 기유(1909)년부터 태을주가 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 쓰여지게 하는 공사이다.
다시 말해서 시천주가 행세한 1860년부터 1909년의 50년 기간 이상을 기유년부터 태을주가 행세하면서 김경흔이 태을주를 받았던 당시의 명대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주문으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태을주가 50년 이상 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 쓰여지며 행세하려면 헛 도수나 난법과 관련되어 사용되어지기보다는 50년 공부로 완성되는 진법에 사용되어야만 여합부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수운이 경신(1860)년에 상제님으로부터 천명과 신교와 함께 시천주를 받은 것처럼 50년 공부로 진법을 짜시는 도주님이 기유년에 태을주를 상제님으로부터 받으셔야 김경흔의 해원은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도주님께서는 기유(1909)년에 태을주를 상제님으로부터 계시로 받으셨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연구해볼 필요성이 있다.20
봉천명일에 이루어진 종통계승의 계시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1909년 기유년 4월 28일 만주 봉천행 도중, 도주님께서는 시루와 솥의 이치에 따른 정산(鼎山)이라는 존호, “진주(眞主)로서 치천하(治天下) 50년 공부(工夫)를 종필(終畢)하라”는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를 상제님으로부터 받으셨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4월 28일 봉천명 치성의 뜻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15 《대순회보》 173호 (2015), pp.24-25 참조.
16 다음의 두 공사가 1909년에 있었던 사실은 《대순회보》 143호, p.21 참조.
17 행록 3장 31절.
18 교운 1장 20절.
19 이는 전해지는 구전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20 영화 ‘화평의 길’ 때문에 도주님이 상제님께 계시로 처음 받으신 주문은 기도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점은 실제 영화에서도 묘사되어 있듯이 기도주를 계시로 받으시는 시점이 만주 봉천에서의 9년 공부 마지막 즈음이라는 것이다. 『전경』 교운 2장 또한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데, 교운 2장 6절에서 도주님이 정사(1917)년 상제님의 삼계대순의 진리를 감오하신 후, 7절에서 한 신인으로부터 구세 제민(救世濟民)의 주문으로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기도주를 받으시고, 8절에서 정화수를 모시고 기도주를 송독하시면서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상제님의 계시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기도주는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신 정사년 2월 10일 이후에 받으셨으며, 받은 이후부터는 4월의 귀국행 전까지 2~3개월간 청수를 모시고 송독하신 것으로 『전경』에는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감오득도를 위한 도주님의 봉천에서의 9년 공부는 기도주에 의한 것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도전님께서 “정사년(丁巳年, 1917년) 2월 10일 23세 되시던 해에 득도를 하셨다. 23수는 태을주의 수와 일치한다. 그 주문으로 도를 받으셨다.”(도전님 훈시(1989. 5. 8))고 훈시하신 기록이 있음을 본다면, 도주님께서 50년 공부를 시작하시는 기유년에 태을주를 받으셨다는 추측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
출처 : 대순진리회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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